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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줄거리, 주제, 감독의 의도,총평

by aloha57 2025. 5. 14.

서브스턴스

줄거리

영화 서브스턴스는 노화, 정체성, 외모 집착이라는 주제를 엮어낸 지적인 서스펜스이자 페미니스트 바디 호러 작품으로, 한때 유명했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크의 몰락과 파괴적인 변신 과정을 따라갑니다.

줄거리는 과거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찬란한 경력을 쌓았던 엘리자베스가 이제는 나이 든 몸 때문에 업계에서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 하지만, 업계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만을 환영하며 그녀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조롱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신비한 물질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이 물질은 단순한 미용 치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젊고 매력적인 자아인 ‘수’를 만들어내는 기이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는 엘리자베스의 몸과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수는 엘리자베스가 잃어버린 찬사와 사랑, 관심을 되살리며 그녀가 누렸던 삶의 환상을 다시 불러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변신이 단순한 ‘회춘’이 아니라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심각한 위협임을 점차 드러냅니다. 수가 점점 대중과 미디어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의해 지워지고 침식당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두 자아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돌하며,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절망적인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점점 더 심리적이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밀어내고 위협하며, 결국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넘어 자아의 분열 그 자체가 되어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육체의 해체와 재구성이 반복되며, 정체성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사회적 기대와 외모 중심 문화에 의해 엘리자베스의 정체성이 파괴되고 자신의 몸조차 통제할 수 없게 된 비극을 폭로합니다. 이는 수많은 여성이 외면적 아름다움과 정체성 사이에서 겪는 고통을 조명합니다. 서브스턴스의 줄거리는 단순히 끔찍한 육체 변화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면에 깔린 인간의 불안, 욕망, 사회적 폭력을 깊이 있게 다루며, 극단적이면서도 치밀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주제

외모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 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정체성의 상실, 그리고 인간 욕망의 이중성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피상적인 갈망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 개인의 자아를 어떻게 균열시키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한때 명성을 누렸던 배우로,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사회와 미디어가 강요하는 이상적인 젊음의 이미지를 되찾고자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곧 ‘사회가 그녀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그녀가 진짜로 누구인지’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을 형성합니다.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이 어떻게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주변화되는지를 고발하며, 연예 산업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비현실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기준을 드러냅니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 젊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요소로 그려집니다. 엘리자베스가 신비로운 물질을 통해 ‘수(Sue)’로 변신하면서 얻게 되는 주목과 찬사, 그리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심리는 젊음이 일종의 권력처럼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덧없고 불안정한지도 강조합니다.더 나아가, 영화는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새로운 육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억눌린 욕망과 불안을 구현한 또 다른 인격을 창조해냅니다. 이 두 인격이 점차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내적 갈등과 정체성 분열이라는 철학적 탐구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의 자아를 타협할 수 있는가? 영화는 이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확실성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듭니다.결국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외모 중심 가치관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미적 기준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그 기준들이 인간의 정신에 어떻게 침투하고, 자아를 침식하며, 정체성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를 드러냅니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관과 자신이 의도치 않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환상들을 불편하지만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외모적인 요소로써 상대방을 많이 평가하는 경우가 은연중에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바디호러라는 장르로 비판한 영화라 볼수있습니다. 

 


감독의 의도

감독 코랄리 파르제(Coralie Fargeat)는 이 작품을 단순한 전통적 공포 혹은 스릴러 장르를 넘어서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만들고자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였습니다. 그녀의 주된 목표는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상품화되며, 결국 주변화되는지를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파르제 감독은 이 작품을 “페미니스트 바디 호러(feminist body horror)”라고 지칭하며, 여성의 몸이 단지 미적 소비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분노와 반항, 주체성을 표출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파르제는 외모 중심의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여성 내부에 내면화되어 결국 여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르고 검열하게 되는지를 비판적으로 탐구합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사회가 강요한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하고자 진짜 자아를 희생합니다. 파르제에게 이 과정은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많은 여성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통해 젊음과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사회적 생존과 인정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냉혹한 현실에 맞서고자 합니다.

더불어 감독은 ‘정체성 분열’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여성들이 강요받는 이중적 역할을 조명합니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단순히 한 인물의 두 단계가 아니라, 사회가 부과한 외적 자아와 억압된 내면 자아의 이중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감독은 여성들이 이미지 중심 사회에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큰 타협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몸이 분열되고 재조립되는 장면들은 단순한 공포적 연출을 넘어, 여성의 몸이 정체성과 생존을 둘러싼 전쟁터로 기능하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파르제 감독은 또한 엘리자베스를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스스로를 억압하는 사회적 힘에 맞서 싸우기로 선택한 능동적인 주체로 묘사됩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여성의 분노가 정당하고 필연적인 감정임을 강조하며, 여성의 몸과 삶에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에 맞선 적극적인 저항의 필요성을 부각시킵니다.

결국 코랄리 파르제는 <더 서브스턴스>를 통해 여성들을 단지 공포의 대상으로만 묘사하던 기존 장르 규범을 해체하고, 여성의 경험과 고통에 대한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창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녀의 의도는 단순히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젠더, 정체성, 가치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깊이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술적 야망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기도 하며, 관객들에게 세상과 공포라는 장르를 여성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이 그만큼 중요한가 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총평

단순한 전통적 공포 영화를 훨씬 뛰어넘는, 외모 중심의 사회적 가치관과 젠더화된 권력 구조, 그리고 개인 정체성의 해체를 깊이 탐구하는 중요한 서브버시브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특히 여성의 몸이 문화적 규범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해 신체와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바디 호러의 스타일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회문화적 비판과 철학적 탐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감독 코랄리 파르자가 공포 장르를 여성의 시각으로 재정의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바디 호러에서 여성의 몸은 종종 고통받는 수동적 객체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여성의 몸이 능동적인 행위자가 되어 분열하고 변형하며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표출합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수’로 변신하며 젊음을 되찾으려 하지만, 그 욕망은 필연적으로 자아의 해체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사회가 구축한 ‘이상적인 여성’에 관한 폭력적인 신화를 강력하게 고발합니다.

기술적으로도 이 영화는 매우 뛰어나게 제작되었습니다. 촬영, 조명, 음향 디자인, 편집이 모두 어우러져 무의식적이고 악몽 같은 시각 언어를 만들어 냅니다. 육체적 변형 장면들은 단순한 충격 요소가 아니라 내면의 고통과 정체성 붕괴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가 격렬한 절정으로 치닫으며 내러티브는 점점 혼란스럽고 파괴적으로 변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흐름은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더욱 강화합니다.

특히 여성의 노화, 외모, 사회적 가치 사이의 복잡한 교차점을 탐구합니다. 영화는 이 교차점에 깃든 분노, 고통, 욕망, 저항의 감정 층위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일부 관객은 영화의 시각적 표현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의도된 것으로서 비판적 성찰의 공간을 만듭니다. 파괴는 곧 억압적이고 부당한 미적 규범을 분해하는 은유가 됩니다.

결국 영화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한 강렬한 비평이자 성찰이 됩니다. 관객에게는 특히 아름다움과 정체성에 관한 자신의 가치관을 질문하게 하며, 공포가 단순한 두려움의 전달을 넘어 깊은 대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낸 대담한 페미니스트 바디 호러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강렬한 영상미뿐 아니라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로 인해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