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역사적 배경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1895년에 집필되어 189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겪던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농노 해방 이후, 구귀족 계급은 쇠퇴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원적인 한 시골 저택을 배경으로, 예술가들과 지식인, 지주들의 얽히고설킨 삶을 통해 당대 러시아 문화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시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구조와는 전혀 다른 극작 방식으로 주목받습니다. 체호프는 뚜렷한 사건보다 분위기, 암묵적인 긴장, 내면의 갈등에 집중한 극을 창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사실주의 연극에 있어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종종 서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며, 그들의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가 드러납니다. 1896년 초연 당시에는 혹평을 받으며 실패작으로 간주되었지만, 1898년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이끄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이 작품을 재공연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공연은 현대 연극의 전환점이 되었고, 체호프는 심리극의 거장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인지 극 내용의 대부분이 인물간의 관계와 심리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크게 시선을 강탈할 만한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심리에 흥미가 많으신 분들이 관람하신다면 재미있게 관람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독백
니나의 이 유명한 독백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렬하며 주제적으로 중요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그녀의 내면적 변화와 예술 및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냅니다. 아래는 그 대사의 전체 내용입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우리 일에서 우리가 배우든 작가든 중요한 건 명예도 아니고, 명성도 아니고, 제가 꿈꿨던 그런 것들이 아니라, 견디는 능력이에요. 십자가를 지는 법을 알고 믿음을 가지는 것. 지금 저는 믿고 있어요. 그래서 고통도 덜해요. 아침이 되면 저는 달려갈 거예요, 제 일을 하러. 나는 배우예요. 나는 예술을 위해 살아가요. 예전에는 아,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저 명성과 성공만을 원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말하고, 저를 사랑해주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중요한 건 견디는 것, 믿는 것, 일하는 것, 사랑하는 거예요. 나는 더 이상 갈매기가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는 배우예요.”
이 독백은 니나가 겪은 감정적 성숙과, 외적 인정이 아닌 내적 강인함과 지속적인 노력이 진정한 예술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극 후반부에서 니나의 모습은 극 전반부의 니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때 크게 작용하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전반부의 니나는 소녀다운 모습이라 보여진다면, 후반부의 니나는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라고 보여질수 있습니다.
그 때 가장 중요한 대사이고, 니나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다짐이 가장 잘 표현 되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3. 니나의 감정선
니나는 가장 복합적인 감정 여정을 겪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극 초반, 그녀는 희망과 이상으로 가득한 젊은 여인으로서 위대한 배우가 되기를 꿈꿉니다. 예술의 순수성과 영광을 믿으며, 사랑과 직업 양면에서 인정받고자 합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과 작가 트리고린에 대한 동경은 그녀가 시골 저택이라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술 세계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이러한 꿈은 하나씩 무너지게 됩니다.
트리고린과의 관계는 그녀에게 실망과 상처만을 안겨줍니다. 그는 그녀를 이용하고 결국 버리며, 니나는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한때 숭배하던 명성과 성공은 결국 공허한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극단에서 거절당하고, 실패와 가난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니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독백에서 그녀는 삶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며, 유명세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소명을 믿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니나의 감정선은 순진한 낙관주의에서 고통스러운 환멸을 거쳐, 조용하고 단단한 인내와 결심으로 이어지며, 이는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니나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동경하며 가장 긍정적인 이면만 바라보며 노력하지만 그 꿈에 거절 당하기도 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아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극 속 니나의 모습처럼 우리도 무너지지 않고 잠을 자고,일어 나고,밥을 먹으며 다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니나라는 인물을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니나 연기를 할 때 주의할 점
니나라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감정 표현력과 그녀의 심리적 발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니나는 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극을 통해 감정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입니다. 연기자는 초반의 젊고 낙천적인 열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이후 점차적으로 무너지는 내면, 상처받은 감정,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용하지만 굳건한 내면의 힘까지 단계적으로 연기해내야 합니다. 초반부의 니나는 활기차고 밝으며, 몸짓은 가볍고 생동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말투는 점차 차분해지고, 동작은 느려지며 내성적인 분위기를 띠게 됩니다.
니나를 단순한 피해자로만 그려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가장 힘든 순간에도 존엄성과 목표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의 변화는 무너짐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독백은 과장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조용한 집중력과 내면의 명확함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체호프의 대사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기에, 연기자는 말보다 침묵, 호흡, 멈춤의 순간들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묘한 표정 변화, 목소리의 톤 변화, 호흡 조절 등을 통해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니나의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절제된 표현력, 깊은 감정이입, 그리고 진실성 있는 연기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씨어터 조이에서 연극이 상영중입니다.
니나가 삶을 자신만의 길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는 순간을 가지게끔 연극을 관람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